“예전 사람들은 모두 걸어다녔잖아요. 마을을 넘나들던 놀이패,간고등어장수 등 너 나 할 것 없이 도보로 다녔죠. 교류는 사람의 발걸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일본 집에서 제2의 고향 서울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제가 주재원으로 5년 동안 서울에서 생활할 당시 도움을 받은 한국 친구들의 고마움에 보은하고 싶었지요.”

27일 오후 6시30분. 마미야 다케미(61)씨는 지난 3월 9일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를 떠나온지 80일만에 서울 시청앞 광장에 도착했다. 도쿄에서 비행기로 2시간이면 닿는 곳에 2300㎞가 넘는 길을 걸어서 온 것이다. 그의 손엔 닳고 닳은 한반도 지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10㎏이 넘는 배낭을 메고 가마쿠라∼나고야∼교토∼부산(페리)∼경주∼안동∼원주를 거쳐 하루 평균 35㎞씩 걸었다. 그동안 닳아 없어진 신발만 5켤레다.

마미야씨는 1999년 7월부터 5년간 일본의 2대 광고회사인 ‘하쿠호도’의 서울사무소장을 지내며 잊을 수 없는 한국인 친구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5월 본사로 돌아가 8월말 정년퇴직했다.

“35년 넘게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해방감도 없지 않았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를 잊어버린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인생은 60부터’라는 한국 속담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한국의 그리운 친구들을 찾아서 천천히 걸어보기로요.”

그의 도보 대장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평소 한국문화에 푹 빠졌던 마미야씨는 교토에서 후쿠이현 오바마까지 80㎞에 이르는 일본의 옛 생선수송로 안동간고등어길을 여정에 넣었다. 류영동 ㈜안동간고등어 사장과는 양국을 오가며 두 길을 함께 걷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 봄으로 예정됐던 류 사장의 방일 탐방은 독도 문제 등 한·일 관계 악화로 취소됐다.

마미야씨도 취소할까 망설였지만 경상북도 영덕에서 안동까지 ‘고등어 길’ 80㎞를 2박3일 동안 걸었다. 류 사장은 예전 옷차림을 하고,고등어를 등에 짊어진 채 동행했다. 지나가던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인사하는 등 시민들의 따뜻한 격려도 받았다. 그는 이번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과 산천 풍경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일본에 돌아가면 ‘80일간의 한·일 우정의 도보여행’이라는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제가 걸은 길이 비록 보잘것 없지만 갈수록 꼬이는 양국 분위기를 푸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윤중식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