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2002년 5월 16일 문화일보 <포럼>란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에 감사드립니다.
아직 부족한 점을 고치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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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의 지방선거에서도 후보마다 고장 번영책을 요란하게 앞세울 것이다. 하지만 지방 번영은 결코 단체장의 어깨에만 달린 게 아니다. 현지 주민들은 물론이고 유지들도 함께 참여해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발전이 정부 주도이던 시절이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안동지방의 약진이 돋보인다. 모름지기 지방 발전을 꿈꾸는 시·군들이 눈여겨봐야 할 사례라고 생각된다.

3년전에 영국 여왕이 다녀간 것이 기폭제가 되어 안동의 관광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영국 현지에선 군주제에 대한 관심이 내리막길이라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대영제국의 영화를 기억하는 세계인은 많다. 그만큼 영국 여왕의 방문지는 탐방해 볼 만한 곳이라는 인식을 각인시켜주는 브랜드 효과가 탁월하다. 이를 테면, 미국의 요세미티나 캐나다의 밴프국립공원엘 가면 여왕이 묵었다는 호텔이 지금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그런 연유에서다.

그런데 여왕이 안동을 다녀간 경우는 하회별신굿 탈춤놀이가 한몫했다. 탈춤놀이의 영국 공연을 관람한 여왕 인척이 감명을 받고는 언젠가 여왕이 한국을 찾을 날이 오면 탈춤놀이의 고향을 직접 찾도록 추천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관계(官界) 못지않게 안동의 춤꾼들이 여왕의 안동 방문에 다리를 놓았다는 말이다.

최근엔 안동의 한 업체가 기발한 사업을 성공시켰음도 예사롭지 않다. 왜구가 들끓는 거친 바다로부터 떨어져 있어야만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 여기던 시절, 그런 곳의 지명에 고래로 ‘안(安)’이란 글자가 들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안동은 바다와 인연이 없다.

여기에 교통 불편까지 더해져 전통시대 때 당시 안동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생선은 갈치나 고등어에 소금간을 잔뜩 한 자반음식이 고작이었다. 안동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즐겨 먹기 시작한 간고등어를 이제 특산물로 내세우는 상혼을 발휘한고 있다.

비록 교포들이 주 고객일지라도 그 미국으로 수출하자면 안전식품임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안동의 업체가 간고등어에 유해물질이 없다는 국제인증을 따냈다. 이는 미국의 일본식당이 복어 반입을 성사시킨 경우에 비견할 만하다.

독만 제거하면 복어처럼 맛있는 생선이 없다. 하지만 미국 당국은 그 유독성에만 착안하여 반입을 오랫동안 금지시켜 왔다. 그럼에도 몇 해에 걸쳐 반입허가를 거듭 신청한 끝에 복어요리로 이름난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에 복어를 잘못 먹고 숨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증거로 내세워 마침내 반입 허가를 받아냈던 것.

안동 간고등어는 올해 1억여원어치의 수출계약이 돼 있다고 한다. 고등어는 남해안과 제주도 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바다 생선이다. 그런데 그 생산지를 제치고 내륙 안동이 시장을 개척했다니, 이것이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의 망상이 현실이 된 게 아닌가.

혹자는 이를 ‘세계화의 역풍(逆風)’이라 하지만, 세계시장의 시대가 열리자 이전에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포도주, 하면 프랑스의 카베르네 쇼비뇽이 먼저 연상되는데, 요즘 프랑스인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포도주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이기 일쑤다. 또한 이탈리아인들이 즐기는 커피가 에스프레소인데 이 커피의 이탈리아 시장을 세계적 커피 판매망으로 등장한 미국의 스타벅스 체인이 성공적으로 파고들었다.

앞으로 나라든 지방이든 아이디어 개발에 따라, 안동 간고등어의 수출 성공처럼, 다른 나라의 고유식품 시장을 얼마든지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자칫 방심하면 우리 식탁의 김치나 된장이 일제나 미제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안동 일대는 위대한 유학자 이퇴계의 흔적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일찍이 ‘택리지’(1751년)에서 일대를 일컬어 ‘옛날 선비가 남긴 풍습과 혜택이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아 풍속이 예의와 문학을 숭상한다’고 했음도 퇴계에서 연유한 바이겠고, 그만큼 안동지방은 도산서원이 자랑이다.

도산서원 앞에는 예와 같이 편의품과 싸구려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다. 뜻밖에도 그 한쪽에, 전국 여느 관광지와는 달리, 책방이 있고 거기서 퇴계나 주변 문화재 관련 책을 팔고 있음이 인상적이다. 역시 문향(文鄕)다운 가게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 고장의 각계(各界)가 자랑스런 전통도 살리면서, 한편으로 세계 첨단의 아이디어를 실천하지 않고서는 고장의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는 말이다."

김형국 서울대 지역개발학 교수